1.
그라함은 잠시 혀로 입술을 축였다. 저 자가 말한 것이 이루어진다는 생각만 해도 입술이 말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말은 해야만 했다.
"난 네놈을 쫓을 거다. 네놈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해도 거기 있을 거고, 빌어먹게도 회개하는 바람에 주님께서 천국에 맞아들인다고 해도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겨 내가 떨어질 지옥으로 같이 끌고들어가 주지. 물론, 라일 디란디의 시체 위에서 작업을 시작해도 좋겠군. 전혀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이해했나?"
상대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지만 그라함은 오히려 눈이 완전히 가려진 까닭에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놈은 그라함을 있는 힘껏 노려보고 있었고, 아마도 쏠지 말지 망설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자기 목숨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소중한 것을 위협받았다는 분노가 그라함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고, 그 강렬한 의지가 오히려 상대의 총구를 붙드는 걸림돌이 되어 있을 터.
2.
어느새 다가온 선명한 초록색 눈동자가 창가에서 비쳐오는 석양빛을 받아 오렌지색으로 엷게 물들어 있었고, 그라함은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체 앞에 서 있는 이 아름다운 생물은 온순한 개일까, 목줄기를 물어뜯기 위해 짐짓 얌전한 척 하고 있는 늑대일까.
목에 흰 팔이 걸쳐졌고, 입술이 다가왔다.
"당신, 키스를 해 보면 안다고 했었지?"
언젠가 눈을 가리고 손을 묶은 채 이 쪽을 비웃던 바로 그 목소리가 조용히 속삭인다. 단지 두 팔을 어깨 위에 얹었을 뿐인데, 마치 꼼짝없이 묶였던 그 때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해 봐요."
"경고해 두지. 이런다고 바뀌는 건 없을 걸세."
"그렇겠지. 어차피 당신은..."
뒷말이 이어지기 전, 먼저 키스를 시작한 것은 그라함이었다.
3.
"사랑해, 그라함 에이커."
남자의 눈이 커진 것과 그가 소총을 내려놓은 것은 거의 동시였다. 은빛 총신이 바닥에 부딪친 순간, 그라함의 눈에 또다른 반짝임이 들어왔다. 왼손에 들린 것이 권총임을 확인하고 거의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어쩌면, 조금이라도 훈련받은 그의 반사신경이 둔하게 작용해 주었다면 그는 총을 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음 순간 자신의 목숨이 사라졌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아마 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날붙이처럼 날카롭게 다듬어진 그라함 에이커의 반사 감각은 그 즉시 위험신호를 날렸고, 세 방의 총탄이 그라함의 콜트 밖으로 뛰쳐나와 상대의 몸을 찢고 지나갔다.